마산 청보리가 읽은 책

어느 날 딸아이가 울면서 말했습니다. "엄마 바꿔죠!"

마산 청보리 2016. 5. 25. 07:00

보통 때 책을 읽으면 뭔가 배우는 기분, 뭔가 얻는 기분이 들어 책장을 넘기는 것이 수월합니다. 이 책을 선택했을 때도 당연히 기대를 하고 책장을 펼쳤습니다. 


책 표지에 적혀있는 '대한민국 보통 가족을 위한 독서 성장 에세이'라는 문구가 저의 기대를 높였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보는 인문학책? 재미있겠는데, 저는 별 생각없이 책장을 넘겼습니다.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은 김정은, 유형선님이 지은 책입니다. 두 분은 부부입니다. 대한민국 보통 가족이라고 칭하고 있지만 보통이라고 하기엔 그 삶이 너무나 치열했습니다.


엄마인 김정은 님은 전직 프로그래머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가족들을 위해 정말 열심히 10년간의 직장 생활을 했지만, 남은 것은 아픈 몸과 '엄마 바꿔죠!'라고 외치는 딸아이들 뿐입니다. 


미술심리치료 과정에서 가족을 그려 보라는 말에 일곱살 큰딸아이는 자신과 여동생만을 그렸습니다. 이미 아이들에게 부모들은 없었습니다.


직장생활을 계속하느라 아이들을 친정에, 시댁에 맡겨서 생활해야만 했고 그렇게 힘들게 일을 했지만 남은 것은 가족해체의 위험과 아픈 몸이었습니다.


아빠도 비슷했습니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직장생활을 했지만 자신과 맞지 않기에 직장을 그만두고 백수생활을 하다가 다시 취업했지만 회사의 구조조정과 파업을 겪으며 힘겨워 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너무 힘들어요."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행복한 일을 찾아봐요."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이 뭔지 모르겠어요."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을 찾지 말고 소중한 것을 찾아봐요. 우리." -본문 중


남편과 아내는 삶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생계도 힘들었지만 부모의 부재를 당연시 하는 딸아이들의 상처가 더 큰 자괴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되었을까, 부부는 책을 통해 그 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같이 마을 도서관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해체 위기에 선 가족, 책을 만나다.


파업과 구조 조정을 겪는 남편에게도, 직업병을 얻어 직장을 그만 둔 아내에게도, 엄마, 아빠를 기다리느라 지친 두 아이에게도, 먼저 스스로가 소중한 존재라고 깨달을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각자에게 찾아온 고난을 긍정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오랜 기간 떨어져 지내느라 우리 가족에게 없었던 가족의 개념부터 제대로 세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 본문 중


이 가족들이 함께 읽은 책은 다양합니다. 당연히 동화책부터 시작해서 인문학 책까지, 책만 읽은 것이 아니라 아빠의 편지, 딸아이의 질문, 엄마의 격려, 딸아이의 그림 그리기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하고 나누었습니다.


가족들은 함께 '강아지똥'을 읽으며 소중한 거름의 가치를 느꼈고, '미스 럼피우스'를 읽으며 세상을 아름답게 할 일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치킨 마스크'를 읽으며 자신의 소중한 부분을 알게 되고, '신화의 힘'을 읽으며 고난을 성취하는 인간이 위대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 동생 싸게 팔아요.'를 읽으며 동생의 소중함을 알게되고, '새로운 친구가 필요해.'를 읽으며 친구의 단점보다 장점을 볼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고전을 통해, 공자도 만나고 맹자도 만납니다. '기억 전달자'를 읽으며 '너를 희생하여 우리가 행복할 수는 없어.'라는 삶의, 공동체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처음에는 의심이 들었지만 확신으로 바뀐 책


248페이지의 비교적 얇은 책입니다. 다 읽고 보니 제가 100여 페이지에 표시를 해 두었더군요.


두껍지는 않지만 한장 한장이 감동적이었던 책입니다.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며, '정말 이 어린아이들이 이렇게 말했을까? 정말 이 책을 읽고 가족들이 이런 것을 공감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책장의 마지막을 덮으며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읽은 책은 어려운 책들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의 상황에 맞게, 가족의 필요에 의해, 적합한 주제의 책을 골라서 같이 읽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부모가 강요해서 읽은 책이 아닙니다. 책을 읽고 대화를 하며 엄마는 자신의 잘못되었던 교육관을 깨우치기도 합니다. 


이 가족은 책을 함께 읽었던 것 만이 특별했던 것 같지 않습니다. 


더 가치로웠던 것은 책을 함께 읽고 꾸준히, 서로를 존중하며 대화를 했던 것, 이것이야말로 이 가족이 다시 건강해 질 수 있었던 힘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이 가족이 다시 건강해 져서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동시에, 이런 가족이 현재의 대한민국에 많고 이 중 다수의 가족들은 대화와 성찰 없이, 세상 탓을 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으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책을 많이 읽어서 시험 점수를 높여라는 뜻이 대부분이라 생각됩니다만 어른들도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공부하지 않는 어른이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가족이 함께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특별한 행복을 느끼게 할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보통가족을 위해, 정신없이 살고 있는 자신을 위해,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답을 위해,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은 소중한 마중물이 되어 줄 것입니다.


삶의 희망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많은 분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지금 가족이 힘든 것은, 세상이 힘든 것은, 우리의 잘못 때문만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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