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교육이야기

설문조사.

마산 청보리 2014. 1. 25. 14:42

2004.12.12 

 

그저께 우리학교 1학년들이 하는 체험활동 설문조사가 있었다.

다른 학교에서는 보기 힘든 토요일 전일제 활동.

국악활동, 등산활동, 짚풀공예, 성교육, 소비자 교육, 요리활동 등

12개의 순회활동을 1년간 돌며 활동한 의견을 수렴하는 설문조사..

아침 조례시간에 들어가서 말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곧 2학년이 됩니다. 그말은 곧 체험활동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1년간 체험한 활동에

대해 여러분들이 솔직하고 진지하게 설문에 응해주면 내년에

여러분들의 후배들은 보다 질높은 활동을 하게 될것입니다.

'우~~~그럼 우리들은요?'

'네. 여러분들이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여러분들이 올해 했던

체험활동은 작년 여러분들의 선배들이 남긴 여러 좋은 의견들을

가지고 다시 업그레이되었던 활동입니다. 내년에 여러분들의

후배들도 그러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체험활동은 계속

쭈~~욱 업그레이드 될것입니다.'

'네~~~'

그제서야 아이들이 집중을 하여 설문에 응하기 시작했다.

3페이지 정도 되는 양면 설문지..

게다가 중간중간 주관식도 끼여 있었다.

이놈들이 아침 자율학습시간에 다 하기에는 분명 애로사항이

있어 보였다.

자습 시간이 다가고 쉬는 시간까지 잡아먹어가며 설문에 열심히

참여했고 시간이 부족하여 난 통계를 낼수 없었다.

그래서 나가며 반장한테 말했다.

'경아 선생님이 지금 나가야 하니 종례시간때 까지 객관식에 대한

통계는 아이들과 함께 내어보도록 해라.'

'네.'

그리고는 교실을 나갔다.

---

잊고 있었다.

점심때 조용히 교실로 올라가 보았다.

올라가면서 나혼자 상상했다.

'우리 아이들이 설문조사 통계를 내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교실문을 여는 순간..

난 너무나도 낯선 상황에 당황해 했다.

이놈들이 자리에 앉아서 손을 들며 통계를 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반 반장인 경이와 한 친구가 앞에 나가서 통계지를 들고 있고

나머지 아이들은 제 자리에 앉아 자신이 선택한 항목번호에 대해

손을 들며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도 믿지 못할 상황에..너무나도 내가 상상했던 모습이

우리반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난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물론 교실 뒤에서 몇몇놈들이 레슬링을 하고 있었다.

난 아이들의 진지한 모임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교실 뒤에서

바닥의 얼마 없는 쓰레기를 줍고는 나왔다.

--

종례시간이었다.

난 보통때도 아이들에게 나의 솔직한 감정을 말한다.

들어가자 마자 말했다.

'여러분 선생님은 오늘 너무나도 기분이 좋습니다. 아까 점심때

선생님은 교실로 올라오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반 친구들이

설문통계를 내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광경을 보고 너무나도 감동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너무나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자 장난꾸러기 홍이가 말했다.

'선생님 정말이예요?'

'네~'

'그깟일로 우리선생님 감동하셨데~ㅎㅎㅎ'

돌아보며 저희들끼리 말하더라.

^-^

'여러분을 선생님 생각대로 행동하기를 강요하기 싫었고 여러분들이

스스로 하기를 항상 바래왔습니다. 하지만 오늘 여러분의 모습은

이러한 선생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학교 생활 잘했습니다. 이상!!!'

'와~~~'

아이들은 집에 갔다.

교무실로 내려오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띄고 있는 나를 다시

돌아보았다.

그리곤 나의 말을 들으며 우쭐해있던...더불어 기분이 업!되어서

집으로 뛰어가던 놈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난.. 행복한 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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