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청보리가 읽은 책

<서평>나의, 카페 버스 정류장. 그곳엔 사람이 있습니다.

마산 청보리 2015. 2. 25. 07:00

2011년. <빈집에 깃들다.>라는 귀농 에세이를 출간하며 세상에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박계해 선생님께서, 귀농 에세이 2탄, '나의, 카페 버스 정류장'을 출간했습니다. 책에는 어디에도 귀농 에세이라는 말이 없으나 제가 읽어보니 내용이 귀농 에세이입니다. 저자의 동의를 얻진 못했으나 용기내어 감히 이름 붙여 봅니다.


이 책을 읽기 전 '빈집에 깃들다.'를 미리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하면 더욱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빈집에 깃들다.' 책표지 박계해지음/민들레출판/2011.5./11,000원>


보통 교사는 경력이 20년이 되면 연금수혜의 자격이 됩니다. 저자인 박계해 선생님은 교직 경력 18년째에 학교를 그만두고 귀농을 하게 됩니다. 연금을 포기하고 귀농을 선택하신 것이죠. 하지만 귀농의 이유가 '빈집에 깃들다.'는 책을 보면 허탈하기까지 합니다. 철저한 준비가 아닌 누가봐도 충동적이었으니까요. 


이번 버스정류장이라는 카페를 여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입니다. 하지만 결과론족으로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저자는 카페의 시작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운명이었다. 버스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간 이 집에 반해버린 것, 창에 붙어 있는 '세놓음'이라는 글자에 이끌려 목적지도 아닌 낯선 동네에 내린 것, 집안을 구역하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 것, 주인을 만나 계약을 하기까지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은"


"이런 촌구석에 카페를 열 생각을 하다니, 나는 과연 대단한 짓을 한 게 분명했다."


박계해, 그녀의 일상 이야기.


경북 상주시 함창읍이라는 촌에 있는 카페, 사실 다방이 어울리는 곳이라죠. 이 카페의 이름이 버스정류장입니다. 이 책은 카페에서 생활하며 있었던 일을 잔잔하고 소소하게 일상을 담아낸 그녀의 이야기 입니다. 박계해 선생님의 글은 참 읽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눈 앞에 그림이 잘 그려집니다. 저도 이 책을 읽었을 뿐인데 카페의 내부 구조뿐 아니라 그 카페의 분위기까지 아련히 느꼈습니다.






사실 저자는 교직생활만 하다가 갑자기 귀농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학교 선생님들만큼 세상일에 어리숙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평생을 교실에서 아이들만 가르치던 분이 뭘 그리 잘하겠습니까. 당연히 그녀는 서툰 농사질에 무던히도 고생을 합니다. 그래도 저자 특유의 느긋함과 긍정적인 마인드로 그 속에서도 행복을 찾아 갑니다. 오히려 한번씩 찾아가는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그녀를 더 걱정합니다. 


하지만 카페를 시작하고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우선 이 건물 주인아주머니가 좋아하십니다. 6년간 안 나가던 건물이 세로 나갔고 그곳에 카페가 생겼으니 말이죠. 이제 밤마다 카페에 불이 켜진 것만 봐도 동네가 사는 것 같다며 좋아하시고 어느 새 단골 손님이 되셨습니다. 


주인 아주머니의 훈화는 계속된다.

"이 자리에서 오래오래 해. 좀 잘된다고 너무 나가지도 말고 안 된다고 동동대지도 말고 지긋이 한 결 같이 해야 돼, 초기투자가 있으니까 3년은 걸려야 순이익이 나오기 시작해. 장사는 수입도 봐야 되지만 나가는 돈도 잘 챙겨서 봐야 돼. 돈은 꼭 애쓴다고 벌리는 것도 아니야. 


꾸준히 변함없이 하다보면 때가 와. 때가 오면 술술 다 풀리니까 조급할 것 없어. 아이구, 내가 또 잔소리 했지? 이러지 말아야 되는데."하며 스스로에게 꿀밤을 주는 태도까지가 멋진 인생선배의 모습이다. 되새김질 할 수록 단맛이 나는 말씀이 아닌가. '이 자리에서 오래오래, 좀 잘된다고 너무 나가지도 말고 안된다고 동동대지도 말고, 지긋이, 한 결 같이...'(본문중)


그리고 초짜인 저자에게 이런 저런 말씀을 주십니다. 본인은 잔소리라고 하시지만 듣는이는 달콤하게 말을 되새깁니다. 그 순간, 그 곳에 없었지만 두 여인의 대화가 참 편안합니다. 사람사는 곳은 저런 곳이 아닐까요?


모두에게 열린 카페, 버스 정류장


이곳에는 다양한 사연의, 다영한 사람들이 오고 갑니다. 삶의 무게를 느끼고 힘겨워 하는 이 시대의 청춘들, 신나게 와서 즐기고 가는 연극반 아이들, 20년 지기 교사극단<조명이 있는 교실> 선생님들, 마을의 어르신 삼총사, 시모임 멤버들, 그리고 그녀의 딸과 아들..


그렇습니다. 이곳은 사람들의 삶의 정류장입니다. 누구나 와서 편하게 차 한잔하며 음악을 듣을 수 있습니다. 책을 보고, 넉살좋고 푸근한 주인장과 부담없이 대할 수 있습니다. 한번씩 울고 싶을 때, 사람이 그리울 때, 하소연 하고 싶을 때, 또 다른 삶을 만나고 싶을 때, 자연스레 사람들은 버스정류장으로 향합니다. 그 곳에는 아침 11시부터 밤 11시까지, 사람을 기다리고 향하는 주인장이 있습니다. 


버스정류장, 카페 내부


카페 버스 정류장은 재미있는 꺼리가 참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카페에 가면 구석구석 사람들이 남긴 이쁜 글, 가슴 아련한 글들을 볼 수 있습니다. 책에도 감동적인 내용이 소개가 많이 되어 있습니다. 주인장이 재미있는 제안을 한 구절이 있습니다.


"자신의 애송시를 손 글씨로 적은 엽서로 보내주세요. 언젠가 당신이 오시면 당신이 보내준 엽서가 카페의 어느 자리에선가 반기며 기다리고 있겠지요. 주소 : 경북 상주시 함창읍 구향리 169-19, 카페 버스 정류장 앞"


이 부분을 볼 때 조용히 웃음이 났습니다. '그래, 오랜만에 손글씨로 엽서를 한 번 써봐?' 별 일 아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안으려는 주인장의 시도가 신선했습니다.


카페, 버스 정류장은 허름하고 고급스럽진 않지만 있을 것은 다 갖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속 가수도 있고, 카페 주제곡도 있습니다. 음악회도 하고, 작품전도 가능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정말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곳입니다. 저자는 마지막에 글을 남깁니다.


"이 책은, 나의 위치를 알리고 나의 생존만을 생각하는 횃불, 듣는 이의 피로감을 외면하는 이기적인 북소리다. 좋은 삶, 성공적인 삶, 의미 있는 삶, 바람직한 삶을 멀리에 두고 차든 책이든 팔고 봐야겠다는 뻔뻔한 외침이다. 머지않아 나의 경솔함을 후회하리라. 미숙, 현실, 재영, 일다, 그리고 나무야, 고맙다."-본문중- 


따뜻한 책입니다. 저자는 누구나 원하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아이들은 도시에 둔채 귀농하여, 통장 잔고를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냅니다. 하지만 농사일이 도저히 만만치 않음을 알고, 직접 염색한 옷을 팔고, 강의를 나가며 삶을 연명합니다. 옷가게도 처분하고 별 생각없이 버스를 타고 가던 중, 자신의 시선을 끈 한 건물을 보고 버스에서 내려 계약을 합니다. 건물 손질을 직접 하며 또 다른 신체적, 육체적 한계를 경험하지만 결국 가게를 열고 운영합니다. 


어찌보면 자신보다 주위 사람들이 더 걱정을 하는 저자의 삶입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자신은 카페를 하며 잘 살고 있다고, 내가 사는 공간은 이런 곳이다,라며 오고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특유의 부드럽고 감성적인 문체로 그려냅니다.


세상이 너무 각박한 듯 느껴지십니까? 나만 홀로 떨어진 것 같으신가요? 나만큼 실패한 인생도 없다고 좌절하고 계신가요? '나의, 카페 버스정류장'을 추천드립니다. 힘겹지만 포기하지 않고, 많은 상처를 안고 있지만 그 상처 또한 나만의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책이 만족스럽다면 책을 들고 실제 카페를 방문해 보세요. 저자의 친필 사인과 인간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남자라서 잘은 모르겠으나 친정 어머님이 계신다면 이런 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문득 가져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저자의 실제 따님은 결단코! 이 생각에 동의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모두에게 삶이 똑같을 수 없습니다. 모두에게 행복의 조건이 이 정형화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권하는 삶의 방향만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이런 삶도 있습니다. 이런 만남도 있습니다. 봄에 어울리는 책, '나의, 카페 버스 정류장'을 추천합니다.


<글이 공감되시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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