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청보리가 읽은 책

글을 쓰지 않으면 건달에 불과한 허지웅.

마산 청보리 2014. 11. 29. 08:00

허지웅, 얼굴만 알고 있는 사내였습니다. TV에서 몇 번 봤습니다. 하지만 오래 보지 않았고 "저런 사람이 있구나."는 정도만 알고 지나쳤습니다. 서점에 갔는데 저자 '허지웅'이라는 이름의 책이 있었습니다. 호기심에 봤더니 글쟁이였습니다. "책을 쓰는 사람이야?" 허지웅씨에 대해 거침없는 입담꾼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책에는 어떤 내용이 있는지 궁금하여 펼쳐보았습니다.

 

 

 

 

버티는 삶을 삽시다.

 

"타인의 순수함과 절박함이 나보다 덜할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절대악과 절대선이 존재하는 세상을 상정하며 어느 한 편에서만 서면 명쾌해질 것이라 착각하지 말되, 마음속에는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문장을 한 가지씩 준비해 놓고 끝까지 버팁시다. 우리의 지상 과제는 성공이나 이기는 것이 아닌 끝까지 버텨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버티는 삶이란 웅크리고 침묵하는 삶이 아닙니다. 오래 버티기 위해서는 지금 처해 있는 현실과 나 자신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얻어맞고 비난받아 찢어져 다 포기하고 싶을 때 마저 오기가 아닌 판단에 근거해 버틸 수 있습니다."(본문중)

 

재미있는 제안이었습니다. 저 또한 지금까지 이기는 삶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터였습니다. 이기고 지는 삶이 아닌 현실을 보고 자신을 냉철히 판단하며 버텨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곤 자신이 버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저자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자신의 관점과 영화를 통해 풀어냅니다. 그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실베스터 스탤론과 록키 발보아는 예순의 나이에 무엇을 그리 증명하고 싶었던 걸까. 그것도 몸과 몸이 부딪쳐 허물어 지는 링 위에서 말이다. 이 무모한 시도를 두고 모두 비웃었다. 하지만 지난 2006년 12월 22일 영화가 공개된 이후, 더이상 아무도 스탤론을 업신여기지 않는다.'(본문중)

 

저자는 록키를 통해 사람들의 인생을 되 묻습니다. '우리는 모두 상처 받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상처는 상처고 인생은 인생이다. 상처를 과시할 필요도, 자기변명을 위한 핑겟거리로 삼을 이유도 없다. 다만 짊어질 뿐이다.'(본문중) 


우리내 인생은 모두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습니다. 오르막이라 하여 거만할 필요도 없고, 내리막이라 하여 포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스탤론은 록키를 통해 인생을 보여줬습니다. 스탤론도 대단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이런점을 읽어내는 저자의 식견이 놀랍기도 했습니다.

 

광주는 끝이 났나?

 

저자는 광주이야기를 자주 언급 합니다. 자신이 광주에서 살았던 과거가 있었고 해서 5.18 이 전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이웃의 이야기였고 친구의 이야기였습니다. '26년'이라는 영화에 대해 아쉬움을 지적합니다. 


왜 개봉일을 급하게 잡았을까? 급한 준비로 인해 영화의 작품성은 상당히 아쉽고 강풀 원작의 '26년'을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가 힘들 정도의 스토리와 분노만을 강요하는 듯한 내용또한 아쉽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이런 성격의 소재를 다룬 영화라면 촉박한 시간 동안 무리하고 조악하게 만들어지더라도, 영화에 대한 평가가 역사에 대한 찬반으로 혼용되기 쉽다. 특히 지금과 같은 시기(2012, 12월)라면 말이다. 제작사가 바란 것도 같은 상황일 것이다. 영화의 함량에 관한 논쟁이 '그럼 너는 어느 편이냐'라는 공방으로 대체되어, 영화에 대한 지적을 광주에 대한 비판으로 소비해 버리는 상황이 유감스럽다. 이 경우 광주를 욕보이는 건 어느쪽 인가?'(본문중)


저자는 누구의 편도 옹호하지 않습니다. 단지 영화에 대한 평가와 역사에 대한 사실을 냉철히 사고하며 생각을 풀어냅니다. 전 아직 영화 '26년'을 보진 못했습니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영화 '26년'도 꼭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지웅씨는 책에서 어머님에 대한 감사함을 고백합니다. 그의 엄마에 대한 표현은 간결하면서도 너무 와 닿았습니다.


'그녀는 우리가 하늘이 내려준 새끼들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그녀가 하늘이 내려준 엄마라고 생각한다. 나는 엄마를 한 명의 여자로서 존중하고 아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엄마가 아니라 현주씨라고 불러야겠다 결심했다. 그녀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럼 나도 행복할 것 같다.'(본문중)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 '효'의 관점이 아닙니다. 그는 엄마도 한 인간으로 보고 있습니다. 엄마라는 사회적 지위를 가진 자가 아니라 행복했으면 하는 한 인격체로 엄마를 보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관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에 저는 고개가 끄덕여 졌습니다.

 

반면 아버님에 대한 원망은 표출합니다. 자신의 평범하지 않았던 과거였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저주도 하지 않습니다. 고시원에서의 특별했던 경험도 담담히 이야기 하며 당시 함께 했던 이들의 안부를 묻기도 합니다. 글쓰기를 통해 살아왔고 엉덩이는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다며 자신의 재주를 사랑합니다. 최민수 사건, 포경수술의 음모, 용산의 떼죽음, 선거에 관하여, 옥소리 사태, 마이클 잭슨, 설국열차, 도가니, 등 아주 다양한 부분들을 이야기 하며 자신의 시각으로 담담히 이야기 합니다.

 

글쓰는 허지웅의 또다른 매력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허지웅이라는 사람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사람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인생의 답은 아니지만 잊고 지나치는 많은 것들에 대해 다시금 떠올리고 고민하게 합니다. 


가벼운 책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무거운 책도 아닙니다. 성찰의 필요성을 강하게 제시하는 책입니다. 너무 다양한 이야기가 있어서 스토리가 연결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에세이로써 챕터별로 깔끔하게 글이 정리되고 다시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적어도 저자는 이 책을 자신만을 위해 쓴 것 같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평범하다고 생각하고 사는 많은 이들을 위해 쓴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마음속에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문장을 한가지씩 준비해놓고 끝까지 버팁시다. 넌덜머리가 나고 억울해서 다 집어치우고 싶을 때마다 그 문장을 소리내어 입 밖으로 발음해보며 끝까지 버팁시다. 저는 끝까지 버티며 계속해서 지겹도록 쓰겠습니다. 여러분의 화두는 무엇입니까. 모두들, 부디 끝까지 버티어내시길.'(본문중)

 

세상사에 관해서 자신을 지켜내며 끝까지 버티어 나가라는 말을 합니다. 나 혼자 침묵하고 잘 살아라는 뜻은 아닌 것 같습니다. 워낙 많은 일들이 생기고 시시비비를 따지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다들 옳음을 외치고 정의를 외칩니다. 자신의 말이 맞고 상대의 말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일축해 버립니다. 


서로 자신의 세력 과시를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쉬이 없어질 것 같지 않습니다. 인간사가 다들 비슷한 것 같습니다. 당장 결정을 내야 할 필요는 없어보입니다. 세상에 휩쓸려 자신을 잃지 마시고, 타인의 의견을 자신의 것인냥 착각하지 마시고 성찰을 통해 끝까지 버티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 같습니다. 허지웅씨의 다음 책이 기다려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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