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청보리가 읽은 책

착하게 살자의 유병재, 그의 책 <블랙코미디>

마산 청보리 2018. 2. 19. 07:00

요즘 JTBC의 예능프로인 '착하게 살자'가 화제인 모양입니다. 저는 아직 방송을 보지 못했지만 프로그램 소개가 재미있습니다.

'단순 교도소 체험이 아닌 구속부터 재판, 수감까지, 사법 시스템이 작동하는 일련의 과정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국내 최초 사법 리얼리티 프로그램'


다양한 인물들이 출연하는데요. 저는 유병재씨가 출연한다길래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최근 그가 직접 쓴 <유병재 농담집 블랙코미디>를 읽었기 때문입니다.


유병재, 참 특이한 인물입니다. 출신이 공채 코미디언 같지는 않는데 코미디언입니다. 게다가 방송작가라고 합니다. 재미있고 리얼한 연기도 잘 합니다. TV프로그램에도 종종 출연하지만 유튜브에 '유병재' 채널 운영, 인스타, 페이스북 등 SNS에서 활동이 더 왕성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기 전 '유병재'씨를 무한도전에서 봤고, 청춘들에게 하는 길거리 강연을 봤었습니다. '웃기려고만 노력하는 사람은 아니구나. 깊이가 있고 표현을 잘 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2017년 10월에 나온 책입니다. 신간은 아닙니다. 당시 유병재 책이 출간되었다는 광고를 봤을 때 읽고 싶은 욕구는 있었지만 잊고 있다가 이번에 읽게 되었습니다. 200페이지의 얇은 책이고 내용의 음미없이 글만 읽으면 한시간 안에 다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짧은 글, 긴 여운, 이 책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입니다.


4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작가의 말을 빌어 각 장을 간단히 소개드리자면 

1장 블랙코미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그러나 블랙코미디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금기를 다루어야 한다." "풍자가 들어가야 한다." "우울해야 한다." 등...내가 생각하는 블랙코미디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화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되는 코미디이다. 요즘 말로 쉽게 바꾸면 '웃픈' 농담쯤 되려나. 어린 시절 동네 할아버지께서 즐겨 하시던 농담 한마디로 더 이상의 지저분한 설명을 대신하겠다. "내가 구정에 죽어야 느이들이 제사 지내기 수울헐 텐디."

  

제2장 분노수첩

나는 본래 화가 많은 편이다. 누구에게든 미움받기를 겁내는 어리석은 성격 탓에 직접 화를 내본 기억은 많지 않지만, 나라는 인간은 본래 화가 많은 편이다. 용기가 부족해 삼켰던 분노들을 글로 써보았다. 기백은 없고 불만만 많은 인간은 이렇게라도 살아야 한다. 피해의식과 때때로 술기운까지 곁들여진 부끄러운 글이기에 될 수 있다면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읽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3장 어느 날 고궁을 나서며

내가 좋은 놈일 땐 내가 가장 잘 안다. 내가 나쁜 놈일 때도 그걸 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내가 나를 제일 모른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나쁘다. 이미 지은 죄가 많아 훌륭한 사람이 되기란 글렀을지 모른다. 하지만 제 몸에 난 뿔도 모르는 괴물이 되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알고는 싶다. 이 장을 '분노수첩' 뒤에 배치한 것은 내 분노의 원인들은 결국 나였다. 결국 나도 같은 인간이다. 하는 반성에서 기인했다.


제4장 인스타 인증샷용 페이지

이 책에서 그나마 불편하지 않은 말랑말랑한 이야기들, 불편하진 않지만 불편할 만큼 오글거릴 수도 있는 이야기들, 중2로 돌아가 이 책을 본다 해도 부끄럽지 않을 자신이 없는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인스타에 찍어 올리기 적당한 이야기들이다.(본문 중)

각 장을 작가가 직접 소개한 글입니다. 이 글만 읽어도 아마 책의 내용 유추가 대략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첫 장을 넘기자 마자 이 책의 반전매력에 빠지게 됩니다. 첫 꼭지 글 입니다.

변비

똥이 안 나온다. 

난 이제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본문 중)

3초간 정적, 이게 뭐지? 이야, 역시 유병재... 다른 분들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이 글을 읽자 마자 유병재의 재치에 절로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글이 짧고 내용이 쉽습니다. 읽는 즉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1장 블랙코미디 편에서는 쓴 웃음이 납니다. '하하하'하는 호탕한 웃음이 아닌 '피식'하는 쓴 웃음이 납니다. 글이 저급해 보여도 너무 공감이 됩니다. 유병재의 책은 글을 멋지게 쓰려고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한 책들, 감정을 짜내기 위해 비현실적인 내용을 구구절절 적어쓰는 책보다 훨씬 솔직합니다. '뭐야. 책이 뭐이래? 이런 것도 책이야? 너무 수준 떨어지잖아.'라고 생각하실 분도 분명 계실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은 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이 나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이 책을 읽으며 공감하실 분들이 대부분이라는 것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통장

걱정, 근심, 게으름, 시기, 질투, 나태, 친일파, 자격지심, 악성댓글, 독재자, 뻔뻔함, 교만, 식탐, 성욕, 의심, 위선, 이기심, 군부세력, 불평등, 폭력, 성범죄자, 혐오, 피해의식, 적폐, 질투, 차별, 꼰대, 자기혐오를 내 통장에 넣어두고 싶다. 거기는 뭐 넣기만 하면 씨팔 다 없어지던데.(본문 중)

추운 날, 점심을 먹은 후 뜨끈한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이 책을 폈습니다. 읽다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짧은 글들이 대부분이라 책도 잘 넘어갔습니다. 중간 중간 접으며 읽었습니다. 유병재가 사는 세상, 유병재가 보는 세상, 유병재가 생각하는 세상이야기가 재치있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평소 속에 있는 말을 가감없이 표현한 구절은 속이 후련합니다. 

듣는 순간 기분 나쁜 말.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


"'생각을 좀 해봐'라고 말하지 마. 얼마나 기분 나쁜지 알아? 왜 몰라? 생각을 좀 해봐."


"내가 너랑 똑같았어. 나 보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라며 충고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지금의 나와 똑같았다면 내가 지금 당신 말을 듣지 않고 있는 건 왜 모르시나?(본문 중)


저는 지하철이 필요 없는 곳에 살아서 지하철을 탈 일은 없습니다. 만약 지하철을 이용하시는 분이라면 이 책을 꼭 추천드립니다. 아마 출근 시간 중에 다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퇴근 시간에 한번 더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책을 보고 키득키득 웃으며 공감받는 느낌을 받을 것이고, 속이 후련한 느낌도 받을 것입니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내 주위에 어떤 놈들이 이상한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유병재는 전문 작가는 아닙니다. 이 책은 그의 첫 책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사서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유병재씨가 용기를 얻어 블랙코미디 2편, 3편을 계속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본인이 힘들고 어렵게, 약자의 위치에서 살아왔기에 약자들의 마음을 알고 힘을 주려 쓴 책 같습니다. 최소한 외로운 청춘들이 많이 읽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젊은 것들은 싸가지가 없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도 조심히 추천드립니다. 당신도 젊었을 때는 별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시대의 차이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 나서 유병재씨의 팬이 되었습니다. 그의 유튜브 채널도 구독했고 그가 출연했던 SNL코리아 편도 역주행하고 있습니다. 밤에 혼자 보다가 큰 소리로 웃은 적도 있습니다.


유병재씨는 분명 코미디언이지만 그냥 웃기려고만 하지 않습니다. 그의 유머, 풍자를 보면 현실이 있습니다. 분노가 있습니다. 일부러 못본 채 하는 것들을 제대로 응시하게 합니다. 그의 개그를 보며 왠지 뜨끔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저만의 느낌은 아닐 것입니다.


<농담집>이라는 타이틀이 있지만 농담 이상의 직언집입니다. 독서의 필요성은 알지만 시간이 없고 두꺼운 책은 보기 힘든 분들께도 권해드립니다. 1시간만에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깊이가 있는 유쾌한 책입니다. 


책속의 닫는 글로 서평을 마무리합니다.

코미디를 시작하며 가장 많이 머릿속에 되뇌던 문장이 있다. '사람들이 날 좋아하는 걸 창피하지 않게 만들어야지.'

여러분의 책장에 이 책이 꽂힌 걸 창피해하지 않게 살아가겠다.

노력하겠다.(유병재 농담집 블랙코미디 닫는 글 중)

저도 이 책을 읽은 것을 창피하지 않게 살아가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블랙코미디 - 10점
유병재 지음/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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