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청보리' 사는 이야기

아이들이 토끼와 만나 경험한 놀라운 변화!

마산 청보리 2017. 10. 23. 07:00

올해 추석은 연휴가 상당히 길었습니다. 직업인으로서는 좋은 일이지만 저희 집에는 걱정꺼리가 있었습니다. 아내 회사에서 키우는 토끼였습니다. 10일이 넘는 휴가에 토끼 밥을 줄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토끼 밥을 주러 매일 가야 하는데..."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솔직히 순간 '욱' 했습니다. 여행을 갈 수 없다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 가족 여행은 못가는거야?"

"1박 2일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애."

여러모로 신경이 쓰였습니다. 

'토끼 그게 뭔데...'

하지만 제가 토끼를 평가하는 생각이 완전 틀렸음을 곧!!!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실제로 첫날 부터 풀을 주러 갔습니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동물원의 동물 보듯이 토끼장 밖에서 풀주는 엄마를 쳐다만 보더군요. 하지만 날이 지나니 아이들도 토끼장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엄마가 일이 있어 토끼들에게 풀을 못주는 날이 생겼습니다. 제가 아이들과 토끼풀을 주러 갔지요. 사실 저는 그 전에는 토끼 풀 주는 데 어떤 협조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 때 놀라운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가위를 들고가 스스로 토끼풀을 준비하였습니다.

아이들이 토끼장 앞에 서니 놀랍게도, 토끼들이 우르르 달려와 문앞에 모여들었습니다.

'헉! 뭐야? 토끼가 사람을 알아보네???'

저는 상당히 놀랬는데 아이들은 놀라지 않더군요.

"아빠, 이제 토끼가 우리를 알아. 우리가 밥 주는 사람인지 아는 것 같애."


아이들은 자연스레 들어가서 토끼들에게 풀을 주었습니다. 토끼들은 달아나지 않았습니다.

원래 토끼는 겁이 많은 동물 아니었던가요?

우리 꼬맹이도 토끼 등을 쓰다듬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엄마가 없어서 그런지 아이들은 더 열심히, 더 정성껏 토끼들에게 풀을 뜯어 먹였습니다.

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인 것 같습니다. 사실 시작은 인간이 필요해서 동물을 키우는 것이겠지만 은밀히 보며 서로 공상한다고 봐야 합니다. 인간도 동물이 필요했고, 동물도 인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즉 누가 누구를 버릴 수 있는, 갑 을 관계가 아닙니다. 생명과 생명이 만난 것이고 생명에는 우열이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열흘간 토끼들과 거의 매일 만나며 달라진 점을 저는 보았습니다. 달라졌다고 해야하나? 자신들을 기다리고 달려오는 토끼들을 보며 존중받는 경험을 한 것 같고, 자신들의 노력으로 토끼들이 사는 것을 보며 책임감도 느낀 것 같습니다. 나의 노력으로 상대를 돕는 것의 기쁨도 느꼈습니다.

풀을 뜯으며 딸아이가 했던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빠, 남을 돕는 다는 것은 참 기분 좋아요. 지금 우리는 토끼를 돕고 있는 거잖아요."


동물과 함께 한다는 것은 대단한 경험입니다. '내가 필요해서, 내가 키운다. 내가 주인이다.' 라는 생각이 아니라 '나도 이 동물로 인해 도움을 받고 있다. 우리는 서로 의지한다.'는 생각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딸아이가 어느 순간 부터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가지 이유를 들며 곤란하다고 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토끼와 아이들을 보며 '강아지를 분양받아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매일 가서 풀만 뜯어 먹였던 것 뿐이지만 아이들은 토끼와의 관계 속에서 그 이상의 행복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학교나 학원의 교과서, 부모의 말을 통해서는 절대 깨우칠 수 없는 것을 토끼와의 관계를 통해 깨달은 것입니다.


이제 우리 가족이 토끼 풀을 안 먹여도 되지만 주말이 되면 토끼를 보러 계속 갈 생각입니다. 사는 곳은 떨어져 있지만 어느 새 이 토끼들은 우리 가족 비스무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생명 중에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인권을 외치려면 동물들의 권리도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물들은 함부로 대하며 인간만의 권리를 외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구는 인간들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토끼이야기 하며 오만 말을 다 합니다.ㅋ


암튼 아이들이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중요하지만 토끼 친구들을 사겼다는 것이 부모 입장에서는 더 뿌듯합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천천히 자라고 있습니다.^-^ 토끼들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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